전시명 ㅣ 'TIMELESS: 시간의 결' 최서진, 이혜원
전시 기간 ㅣ 2024.11.26. (Tue)- 12.8.(Sun)
전시 소개 ㅣ이번 전시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긴 시간과 정성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들을 조명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최서진 작가의 작품 속에는 불의 그을음으로 새로이 탄생한 한지들이 프레임 가득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는데, 관객의 시선의 흐름에 따라 변하게 되는 고차원의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숨을 조절해가며 촛불로 가장자리를 태운 뒤 섬세하게 배열하는 작업은 마치 수행자의 고행을 보는 듯 하다. 이혜원 작가는 바인딩 스티치와 한지의 특성을 이용해 삶의 이야기를 서재 안에 켜켜이 쌓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책의 구조적인 측면을 오랫동안 연구하여, 책이 갖고 있는 예술적인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재료와 손길이 하나 되어 작품에 깃든 이야기들이 관객들의 마음 속에 닿아 가을의 여운을 더욱 풍성하게 느끼게 되시기를 바란다.
하랑갤러리 ㅣ종로구 자하문로 38길 45, 1F (환기미술관 맞은편, 주차 가능)
관람시간 ㅣ 11 am- 5 pm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ㅣ(02)365-9545, galleryharang@gmail.com, 인스타그램 DM @galleryharang
작품 리스트 신청 ㅣ https://moaform.com/q/r6GOkV
최서진 작가노트
나의 작업은 숙련된 기술을 추구하며, 이는 시간, 기술 및 인내에 대한 헌신이 필요한 끝없는
노동집약적과정이다. 월터 벤야민이 기계적 복제가 미술의 아우라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한 것처럼, 나는 이
본질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노동 집약의 결과물은 복제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양초불로
종이를 태우는 행위; 시간과 노동의 적층. 이러한 수행과도 같은 반복적 행동은 예술적인 의식례를 넘어
자아존재를 반영하며 작업의 기본 철학을 재검토한다.
불은 나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매체다. 불은 고정되지 않은 다른 물질의 숨겨진 특성을 드러내는 자연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을린 자국은 깊은 선들이 되고, 그 그을음에서 다양한 색이 탄생한다. 나는 종이의 1mm
가장자리를 불태우면서 종이와 불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나는 종이와 불의 중재자가 돼 엄청난
집중력과 통제로 한지의 1mm를 태운다. 침묵 속에서 똑같은 힘을 주고, 똑같은 호흡을 반복하며 불에
집중해야 고른 선이 만들어 진다. 이 과정에서 하나라도 틀어지면 종이는 금방 타버리고 만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수행과 갈등 속에서 나는 자연과 인공의 균형을 유지한다. 태우는 행위, 그을음의 방법은
일정한 규칙에 얽매여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나의 작품은 종이를 태우는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 이 반복적인 작업은 상당한 인내,
집중력 및 시간를 필요로 한다. 구체적으로, 나의 작업은 종이를 적층하고 태우는 데 필요한 인내와 시간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작업들은 단조로운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의 은폐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은폐하려 하고, 누군가는 폭로하려 한다. 하이데거는 자기은폐가 결함이 아닌, 오히려 세계와
의미있는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나의 예술적 실천에 내재된 철학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봐도 좋다. Self-Concealment 시리즈는 인간이 은폐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것, 욕망
본질에 대해 탐구하며, 끊임없이 오가는 그 무한한 굴레 속에서 반복된다. 태우는 행위는 은폐와 폭로의
이중성을 구현한다 - 태우는 행위 자체를 소멸, 은폐로 볼 수 있는 동시에 선과 색을 드러내는 폭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은폐이면서도 폭로이고, 폭로이면서도 은폐이다. 나는 그저 내가 숨기고 싶은 욕망이 불길에 모두
타서 종이에 흔적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은폐와 폭로 그 사이 어딘가에 멈춘 내 욕망이 종이에
흔적으로 남는다.
이혜원 작가노트
‘책은 읽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책은 단순히 읽는 것만은 아니다.’
‘책은 하나로 된 복합적인 형태의 예술작품이다.’
책은 형태와 소재만으로도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크기와 소재들로도 멋진 구성을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권의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들이 쓰여 지는데,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해부하여 새롭게 평면적으로 표현해보려 하였다.
‘다름이 하나가 되어 보여 진다’
사람들의 말속에는 그들의 인생이 스며들어 있다. 어느 누구하나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다른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사람의 삶은 수많은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품고 있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쌓여간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야기들은 쌓여가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섞이면서 이야기의 향연은 시작이 된다. 나는 색들로 다름을 표현했으며, 인생 이야기들을 종이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 다름이 모여 하나로 연결하고자 바인딩 스티치와 뭉쳐지는 한지의 특성을 이용해 함께 조화가 이루어짐을 나타내려 하였다.
‘이야기의 향연으로 꽉 찬 이 세상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나의 작품에서도 서로 다른 색들과 질감들이 조화를 이룬다.’